call of cthulhu 7th edition fanmade scenario
늘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풍경, 녹음된 것을 반복해서 재생시킨 듯한 일정한 소음들 만이 존재하는 공간.
배고픔도 졸음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 어떤 욕구도 찾아오지 않는 이 고요한 세계에서 숨을 내쉬는 것은 체이스 크뤼거,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워커의 알에 갇히게 된 이후로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 무엇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던전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해 지금은 당신조차도 길을 찾을 수 없는 거대한 미로같은 공간이 됐죠.
함부로 걸음을 옮겼다간 당신 또한 길을 잃게 될 지 모르니, 미로의 중심부일 이 작고 지루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작은 마당이 딸린 집 한 채가 전부인 이 공간에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체이스 크뤼거:(생각이 멈춤을 느꼈다. 아마 오래 전부터 이리 되었으리라. 바깥을 알 수 없었으니 새로운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고, 이 내부에서도 시간은 멈춘 듯 굴었으니 고민할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드문드문, 마지막 저를 바라보고 떠나던 그의 뒷모습만큼은 어쩔 수 없이 떠오르고는 했다. 제 마지막 남은 파편처럼.)
...그리 사색에 잠겨있으면 아주 먼 곳에서부터 굉음의 여파가 들려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누군가의 침입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탄.
체이스 크뤼거:......
아니, '누군가'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죠.
이 거대한 던전에 하나뿐일 목숨을 던져 당신을 꺼내려는 짓을 할 어리석은 이는 없을 테니까요.
몇십 번, 몇백 번, 몇천 번을 죽어도 죽을 수 없기에 지겹도록 반복해서 이 던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자.
당신이 알 속에 갇히기 전 마주했던, 또한 드문드문 떠올랐던 그 뒷모습의 이가 분명합니다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 또한 늘 그랬듯 던전의 주인이자 알의 주체인 당신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추방당하겠죠.
이곳은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격리시키기 위해 그 누구도 당신을 꺼낼 수 없도록, 당신의 의지로 설계된 단 한사람 만을 위한 감옥이니까요.
그러니 저 부질없는 진동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눈을 감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당신의 세상은 다시 고요와 평화를 찾을테니...
.
.
.
어느새 부쩍 가까워진 굉음에 잠에서 깬 당신이 미로로 향하는 입구를 응시하면, 곧 시야에 담겨오는 것은...
괴물의 푸른 피를 뒤집어쓴 지친 행색.
익숙하지만 기억하던 것과는 조금 달라진 얼굴.
원망일지 집념일지, 알 수 없는 것이 담긴 두 눈.
…당신이 던전에 갇히기 전 간절히 원했을 것을 떠올립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구하지 못하길. 그리하여 인류의 안녕이 지속되길.
그 마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던전의 내부가 침입자에게 얼마나 큰 위험이었을지 어느 정도는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눈앞의 그는 그 수많은 위험과 맞서 기어코 이곳에 당도해 당신의 앞에 서 있는 거겠죠.
라이너 에른스트:하여간.. 너는 적당히라는 것도 몰라?
무언가의 시체로 보이는 살덩이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둔 그는 조금 지쳐 보이는 걸음으로 한 걸음씩 당신의 앞으로 다가섭니다.
체이스 크뤼거:(환영을 바라보는 것처럼 초점이 멍하게 흐려졌다. 그러다 목소리가 들려오면 퍼득 놀란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현실인가?) .. ..라이너?
라이너 에른스트:(괜히 체이스 눈 앞에 손 흔들어본 뒤에 대꾸해요.) 왜 그렇게 봐? 여튼..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니고. 나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래서 지금 쏠 건데, 괜찮지?
체이스 크뤼거:(오랜만에 봐서 하는 소리가 쏠 건데 괜찮냐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성격상 이곳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저를 납득시켜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가만 두면 물안개처럼 흩어질 것 같은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보고 싶어 왔다 그러면 내가 먼저 공격했을 거야. 그건 네가 아닐테니까. ...다만, ..내가 여기서 나가도 괜찮은 거냐? 바깥의 안전은.
라이너 에른스트:(고개를 끄덕이면 총 한번 장전해뒀다가 시선 옮겨요.) 음~.. 그거 다 말하기엔 너무 긴데. 지금 여기서 느긋하게 설명해줄 시간이 없어서. 일단 밖은 별로 좋지 않다는 것만 알아둬. 나머진 나가서 말해줄게.
체이스 크뤼거:(좋지 않은데 제가 여기서 나가도 괜찮은걸까. 불안이 들었지만 그것을 모를 라이너가 아니라 판단했다. 그는 조금이지만 변해 있었다. 고작 몇 개월이 흐른 건 아닐 터였다. 그 시간 동안 라이너 에른스트라는 자를 더 신뢰하게 된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이유는 저도 알 수가 없었다.) 난 가끔 네 망설임 없는 그 손이. ..(한숨) 그래. 나가서 이야기하자.
그 말이 끝나면, 어깨만 으쓱하더니 그대로 총구를 당신의 심장에 겨누고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심장에 차가운 탄환이 관통하고, 당신을 가두어 둔 이 세계는 빠르게 무너져 내립니다.
온 사방으로 거대한 워커의 알이 부서져 내리는 굉음이 가득합니다.
머리칼 사이를 휘감는 시린 바람은 마지막으로 세상에 발을 딛고 있던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 같네요.
체이스 크뤼거:(아, 바깥이구나. 그 공기가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응, 근데 몸은 좋지 않네.)
오랜 잠에서 깨어난 탓일까요?
간만에 느껴보는 자신의 진짜 육체는 기억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실재하는 육신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움직이는 감각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체이스 크뤼거:(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느낌이 이상하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시 라이너를 찾아본다.)
몸 상태를 확인하고 뒤늦게 당신에게 총을 겨눴던 라이너를 찾으면, 그는 보이질 않습니다.
찾아보려 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그의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워 그저 무거운 발을 움직여 쏟아져 내리는 파편을 피하는 것이 고작이군요.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70/35/14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게 무슨 난리야?)
그때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당신을 덮쳐옴을 확인합니다.
갑작스러운 위험에도 몸이 기억하는지, 반사적으로 움직여 그것을 피했을까요?
라이너 에른스트:적응 빠르네~. 누가보면 계속 여기 있던 사람 같은데.
직후 굉음과 함께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이런 상황임에도 가벼운 말을 던지는 라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체이스 크뤼거:(휙 고개를 돌려 그를 확인하고 나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았어. 몸 상태가 좀 무겁거든. 네가 어디 던져두고 가버린 줄 알았다. ..근데 이게 무슨 난리야?
라이너 에른스트:하하,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여전히 가벼운 투로 말을 건내며) 뭐.. 상황은 지금 네가 보는대로, 빙벽이 무너지는 중이지? 근데 이렇게 잡담 나눌 틈이 없을텐데~.
라이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빙벽의 파편들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합니다.
체이스 크뤼거:..쯧.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진짜.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잘보면 쏟아지는 파편들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음이 보입니다.
눈으로 뒤덮인 듯한 흰 몸체와 빙벽을 닮은 새파란 빛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체이스 크뤼거:..저것은.
기준치: | 65/32/13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1
거대한 파편들이 땅으로 쏟아지는 것이 멎어갈 때쯤,
눈보라와 허공을 부유하는 파편의 잔해 사이에 숨어있던 거대한 것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십 미터는 족히 될듯한 거대한 몸체를 가진 하얀 괴물.
빛을 잃은 상태로 얼어있던 몸체에 서서히 푸른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모두 죽은 사체일 뿐이라 여겼던 빙벽 속의 워커입니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빙벽을 깨고 나온 워커는 곧, 거대한 입을 벌려 당신을 격리해 두었던 워커의 알을 향해 달려듭니다.
체이스 크뤼거:저건, ...그때의?
무너져 내리고 있는 알의 잔해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기 시작하는 괴물의 주변으로, 어느새 1, 2형 워커 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광경은 더 끔찍하네요.
모여든 워커들은 스스로 괴물의 입안을 향해 제 몸을 던져넣었으며, 괴물은 그들을 기꺼이 삼켜내고 있습니다.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4/32/12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74/37/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체이스 크뤼거:(특이점이 온 워커가 날뛰는 것인가? 침착하게 상화을 파악하려 했다.)
수십 마리의 워커를 모두 삼켜낸 괴물이 눈앞에 살아 움직입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이 저 괴물을 막아낼 수 없다면, 빙벽 밖의 도시 베모스는 괴멸될 것이며 수백만의 사상자가 발생하겠죠.
그렇게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전투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
.
.
.
…이상합니다.
눈앞의 괴물은 그저 두 사람을 응시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멈춰있는 듯 보였던 괴물은 아주 느리고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당장 공격해오지 않는 걸까요? 왜?
…그래도 경계를 늦출 순 없죠.
두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방금전까지 제 동족일 워커 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괴물이니까요.
거리를 두고 멈춰선 괴물의 거대한 형상은 기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인간을 닮은 머리에 허리로부터 돋아난 기이한 촉수들.
어깨로는 거대한 날개가 자리하고 있으며, 수십 겹으로 돋아난 날카로운 이빨에서는 방금 먹어 치운 워커 들의 체액과 살점들이 지저분하게 늘러붙은 채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공포를 일으키는 위협적인 외형과는 다르게 괴물은 얌전히 두 사람을 응시해올 뿐입니다.
체이스 크뤼거:(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계속 괴물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곧 들려온 것은 놀랍게도 눈앞의 괴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입니다.
…이 괴물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건가요?
체이스 크뤼거:워, ..커가 말을?
그런데 옆에 자리한 라이너는 이 상황에 그다지 놀라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이런 상황을 겪는 게 처음이 아닌 것처럼…
체이스, 당신이 잠들어있었던 시간 동안 바깥에선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체이스 크뤼거:저건 이미 워커라 부르기도 애매해진 것 같은데. ...대체. (중얼)
체이스 크뤼거:(그는 곧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래. 하면 알려줄텐가? (사실 저 정체가 더 궁금했으나..)
하와:(체이스가 바라보면, 괴물 또한 여전히 마주한 체로 질문에 답합니다.) ...너희를 죽이는 일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다. 설령 죽일 수 있다 해도 그것은 내 소명을 다하는 것에 불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지.
체이스 크뤼거:(라이너 흘끗) ..죽일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라. 넌 누구지? 아니, 넌 무엇이냐.
하와:그 분의 소명으로 이곳의 멸망과 혼돈을 주기 위해 있는 존재. 단지 그 뿐인 존재. 그리고 체이스 크뤼거, 과거 네가 안일하게 여겼던 존재이기도 하지. 궁금한 것은 그게 다인가?
체이스 크뤼거:(자신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혼란하기 그지 없었다. 라이너가 저 괴물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라이너. 물어야 할 것이 있나? 순순히 대답해주는 것이 찝찝하기 그지없지만.
라이너 에른스트:딱히 없는데, 음~.. (체이스의 말에 한번정돈 생각을 해보는 듯 싶더니, 괴물을 바라봅니다.) 뭐... 굳이 있다면 뭘 시켰는지 정도만 알려주면 좋을 것 같은데. 누가 시켰는진, 딱히 궁금하지 않고~.
체이스 크뤼거:...(왜 누가 시켰는지 궁금해햐지 않을까. 저는 되려 그것이 궁금했다. 잠시 라이너를 눈에 담다 괴물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여전히 대답해 줄 의지가 있다면, 그 분이라는 자가 무얼 시켰는지 알고 싶은데. 멸망과 혼돈 은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
하와:...위대하신 그분께서 나 '하와'에게 내린 소명은 이 행성의 모든 인류를 살육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은 멸망한 행성에서 홀로 영생을 살아갈 존재만을 위한 것이었지. 그런데.. 내가 잠들어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는 영생을 사는 존재가 둘이 됐구나.
체이스 크뤼거:... ...(그 이야기에 깊게 침묵했다. 저들이 만들어 낼 지옥이 .. 홀로 영생을 살아갈 존재를 위한 것이었다는 게 무얼 뜻하겠는가. 갑자기 머릿속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체이스 크뤼거:...왜? 무얼 위해, 어찌하여 나를 위해 그 지옥을 만들려고 하는 거지?
하와:..여전히 알지 못하는가? 스스로 그분을 섬기던 영광을 기억에서 지워냈기에, 그렇기에 그 분께서 벌을 내려, 그 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인류가 우리의 손에 죽게 되는 것도, 그 과정에서 나의 자식들이 희생되는 것도, 이 행성이 지옥이 되는 것도 모두 체이스 크뤼거, 너의 탓임을 잊지 마라. 그분께서는 곧 지옥이 될 이 행성에서 죽지 못해 살아갈 네가 지닐 혼돈을 원하셨다.
체이스 크뤼거:(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가 말하는대로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기억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죄다 저 탓이라 말하는 괴물의 말을 듣고 무슨 반응을 내어보일 수 있을까.) 친히 행차해 알려주다니 고맙군. 다만 내가 과거에도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움직이던 존재는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만 입을 닫는 게 좋겠어.
'하와'는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대화가 끝났음을 직감했는지, 두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전합니다.
직후 자신을 '하와'라 칭한 괴물은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날개를 펼치곤 순식간에 창공 너머로 사라집니다.
괴물이 사라진 곳엔 무너진 빙벽의 파편, 그리고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 뿐.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라이너의 목소리였습니다.
괴물이 사라진 하늘을 잠시 올려보던 라이너는 이내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라이너 에른스트:저게 그렇다는데. 음~.. 들은 감상은 어때?
체이스 크뤼거:(멀리 사라지는 하와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삐뚜름 미소짓는다.) 어처구니 없네. 그리고.. 하. 복잡하다. (잠시 저 혼자 제 머리를 헝클였다.) 그러는 너는, 들은 후 반응이 고작 그거?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
라이너 에른스트:(가만히 하는 행동을 지켜보다 살짝 어깰 으쓱이고 맙니다.) 아니? 나도 다 처음 안 사실이지. 다만 이제와서 진실을 알아도 지금이 달라지는 건 없고, 앞으로의 일을 신경쓰기도 바빠서, 단지 그래서 그럴 뿐이야. 뭐~.. 내가 화라도 냈으면 좋겠어?
체이스 크뤼거:그런 건 아니었다. 네가 화를 내면 정말 어찌 해야 할지 몰랐을 것 같거든. ..뭐 하나 지켜보겠다고 저 구석에까지 쳐박혀 있었는데, 결론은 이거라니. 허탈하기도 하고. 그냥 ..여전히 널 모르겠어서 물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는 잠시 먼 과거, 라이너 탓을 했던 미숙했던 저를 떠올리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라이너 에른스트:아, 그래? 그거 나도 제법 궁금한데.~. ..하지만 내가 어지간히 발화점이 높아야 말이지~. (별의미는 없는 말인 듯, 가벼운 투로 대꾸를 합니다.) 원래 그런거야. 나도 너를 잘 모르 듯, 너도 그런 거라고. 다 알려면 아마.. 평생을 같이 있어도 모를 걸. 물론, 그정도로 볼까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늘 하던대로 툭, 농담을 던졌습니다.)
체이스 크뤼거:( 제 기억 속의 평소와 다름 없는 그의 모습에 되려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라이너 나름의 배려일까? 모르겠다. 다만 저는 이것을 멋대로 배려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피식 웃는다.) 이만큼 엮었는데 좀 오래 보면 어때. ...어쩌다보니 같이 세상까지 구하게 되어버린 것 같지만. (차가운 바람에 흩날리는 라이너를 가만 응시한다.)
뒤늦게야 말하네. 그 동안 잘 지냈나? 좀..변한 것 같군.
라이너 에른스트:저쪽에 오래 있다보니.. 생각이라도 변했어? (그렇게 말하는 게 의외라는 듯, 대꾸하고는, 한박자 늦게 체이스 바라봅니다.) 변하긴 했나~. 모르겠네. 그냥 전처럼 똑같이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긴 했지. 반만 잘 지냈다고 해둘까? 너는... 뭐, 물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땠어? 역시 지루하고 따분했나?
체이스 크뤼거:사고가 멈춘 느낌은 썩 좋지 않았어. 한 것이 없으니 잘 지냈다고 하기도 묘하지만.. 애써 불안감을 감추고 평온함을 가장했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널 가끔 떠올리며, 널 믿는 것 뿐이었다. ..내가 무언가 달라졌다면 그것에 원인이 있겠지. (끄덕) 결론은 ..나도 나름 잘 지냈다.
라이너 에른스트:(저거 잘 지낸 게 맞나? 싶지만 굳이 말을 내뱉진 않습니다. 본인이 그렇다고 하면 결국 그런 것이고 하였으니.) 결과적으로 잘 지냈다면, 됐고. 음~.. 일단 베모스로 돌아갈까? 확인해야하는 것도 있고, 더 긴 이야기는 가서 하는 게 더 좋을 듯 싶은데.
체이스 크뤼거:그래.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면 많은 인사를 나눈 셈이다. 자신도 현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으니.. 그를 뒤따르겠다는 듯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돌아가자.
서로 간의 적당한 인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무너져내린 빙벽의 잔해를 뒤로하고선 발걸음을 옮깁니다.
북대륙의 대도시, 베모스로 들어섭니다.
다행히 빙벽 앞으로 몰려들었다던 워커 들이 사라져 이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도시 내부에 워커의 침입이 있었던 모양인지 전투의 흔적과 부상병들이 이송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 위로 붉고 푸른 자국들과 부서져 내린 건물의 잔해가 가득한 풍경이 도시로 들어선 두 사람을 맞이합니다.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조금 주변을 둘러보면.. 어찌 된 영문인지 보이는 것은 전부 군인들뿐이네요.
베모스의 군복을 입은 자들과, 헤이븐의 노아 들로 보이는 복장을 한 이들도 있습니다.
민간인은.. 보이지 않네요.
체이스 크뤼거:..어찌된거지? 죄다 군인들 뿐인데.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져 전부 대피라도 시킨건가?
라이너 에른스트:(그렇다는 듯 가볍게 고개 까닥여요.) 그렇게 안하면 다 당했겠지. 일단.. 여러곳에서 피곤해질테고~. 근데 지금 상황보면 거의 다 한 것 같긴 한데~..
체이스 크뤼거:..고생했겠네. (와중에 그 먼 곳까지 와서 저를 꺼낸다고 난리치고 싸웠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홀로 헛기침을 한다.)
피해는 ..
라이너 에른스트:안했다고는 할 수 없지. (그리고 그 모습을 물끄럼 보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엽니다.) 피해라~.. 엄청나게 크진 않아. ..아마도? (괜히 어깨만 으쓱했네요.)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무리의 군인들이 다가와 두 사람의 걸음을 멈춰 세우며 경례를 해옵니다.
그리고 잠시 라이너와 대화를 나누던 군인의 시선이 체이스를 향합니다.
베모스 군인:..많은 이들이 크뤼거님의 귀환을 염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베모스는 5년 전 인류를 위해 희생하셨던 크뤼거님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5년간의 희생에 감사드리며, 우리 베모스는 크뤼거님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말을 마친 군인과 무리를 이루고 있던 이들은 하나같이 경례 자세를 취합니다.
주변이 침묵으로 물든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잠시 머뭇대던 주변의 군인들 또한 몇몇을 제외하고 하던 일을 멈춘 뒤, 당신을 향해 경례를 올립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중에 라이너가 가볍게 손짓하자 경례를 올리던 군인은 자리를 떠나고,
…남은 것은 두 사람 뿐이네요.
5년이라 했던가요?
당신이 알에 격리되고서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모양이죠.
그다지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5년.
당신의 복귀를 환영한다며 경례를 올리던 군인과,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 주변의 반응을 보아 당신이 워커의 알에 격리됐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보는 게 맞겠습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격리된 채 보냈던 지난 5년간,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모든 것이 의문으로만 다가오는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의 계획은 보란 듯이 실패했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을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뿐이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당신을 깨울 일 또한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라이너 에른스트:참나.. 이런 게 제일 싫다니까. 너도 안그래? (무리를 해산 시킨 뒤, 체이스를 보며 물었어요.)
체이스 크뤼거:뭐 .. 군인 답기는 했다만. (이런 의식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어색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다만, 수 많은 이들이 보내던 그 미묘한 시선을 모르는 척 하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 희생. (그 단어를 읊조리고는 슬며시 웃었다.) 내가 그리 대단한 인간인 줄 아는 것도 웃겨.
라이너 에른스트:그렇지? 역시 우리 둘 다, 이런 건 어울리지 않다니까. (그러며 다시 찬찬히 걸음을 옮겨 갔습니다.) 어쩔 수 없어. 모르는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이는 거지~. 나야, 그래도 본 게 있으니까 그렇게 안보이는 거고~.
체이스 크뤼거:굳이 정정할 마음은 없지만 말이야. ...해서 결국은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이라 날 깨운거군. 네가 오늘 오기 전에, 안에서 지속적인 소음을 들었어. 몇 번이고 들어왔다가 돌아갔다, 다시 또 부수기 위해 오는 .. 예상은 했지만 정말 너일 줄은 몰랐지. (슬며시 뒤따라 갔다.) 날 깨우기로 한 건 네 결정이었나?
라이너 에른스트:이거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음.. 그래도 설명이 필요하긴 하려나? (고개 살짝 기울였지만, 금방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냥 나인 거 확정 수준 아닌가? 누가 미쳤다고 오겠어~. (괜히 손사래 가볍게 치며 대꾸하고) 글쎄. 근데 결과적으로 내가 이러고 있으니.. 내 결정이 아주 아닌 것도 아니지?
체이스 크뤼거:그러니까 ... 더 솔직히 말하면 네가 미쳤다고 여기를 올까. 였는데. 이상하잖아. 넌 그럴 위인이 아니니까. 해서 얼굴을 보는 순간 무언가 큰일이 터졌구나 싶었지. ..(끄덕) 맞아. 상황을 알고보니 네 결정이 옳았어. 사건의 원인은 나에게 있는데 저 편한 곳에서 눌러 앉아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라이너 에른스트:(그 말에는 조금 웃음을 터트렸다가 가라앉혀요.) 왜, 한번정돈 쟤가 미쳐서 오나보다, 생각도 좀 해보지. (가벼히 대꾸하고는 대화를 나누며 어느 새, 도착했을 막사의 입구를 가린 천을 올립니다.) 물론 네가 원인인 건, 난 이제 알았지만~. ..뭐, 일단 들어가지?
체이스 크뤼거:다음 번에는 그리 해보지. 네가 가끔은 미쳐서,...위험에 빠진 나한테 와 줄수도 있다고 말이야. (웃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농담조로 가벼이 말하고는 천막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면 제법 아늑한 내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몇 가지 물건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테이블과 몸을 뉠 수 있는 간이침대,
라이너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 같은 것들이 막사 내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들어간 뒤에야 따라 들어온 라이너는 내부를 밝히는 조명을 켠 뒤, 추위를 피하고자 설치됐을 구식 히터로 향합니다.
기계마저 얼어붙을 추위에 말을 듣지 않는 구식 히터가 겨우 켜지고 나서야 라이너는 이쪽으로 와 앉으라는 듯, 의자를 툭툭 건드립니다.
그러며 먼저 그 맞은 편 의자에 자릴 잡고 앉아, 당신이 앉길 기다렸네요.
체이스 크뤼거:(히터를 키는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곧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다 곧 너를 응시했다.)
라이너 에른스트:(자리에 앉으면 고개를 살짝 기울인 체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제일 궁금해 할 것 부터 이야기 할까, 싶은데. ..하,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담? (머릿 속으로 정리를 하는지 여전히 기울인 체입니다.)
체이스 크뤼거:(스스로의 손가락을 얽은 채로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두서 없이 말해도 상관 없다는 듯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려도 상관없고, 두서 없어도 괜찮으니 말해 봐.
라이너 에른스트:그래. 알아서 잘 해석해서 들어, 그럼. (제법 긴 이야기가 될 터인지 답지않게 목 한번 가다듬고서는 입을 엽니다.) 음~.. 그러니까 네가 워커의 알이 된 이후, 몇 년은 평온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2차 이변'이 발생했어. 아, 진짜 생각할 수록.. 평온할 때가 참 좋았는데~. ...뭐, 이건 지나간 일이니 이젠 됐고. 아무튼 고등지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3형 워커가 1, 2형 워커를 통솔하고, 그 워커 들이 한데 모여 각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죽음의 땅'에 자릴 잡았어. 이게 이변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여튼, 그 뒤로는 이전과는 다른 체계적인 침략 시도를 걸어와서 결국 남대륙이 버티지 못하고 괴멸했어. 그냥 전처럼 무차별이면 어찌 막을 순 있었을텐데 말이지. (괜히 어깨 한번 으쓱이더니 다음 말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이후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대인원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열차를 각 도시에다가 제작했다고나 할까. 아까 오면서도 말했지만, 덕분에 거의 대피를 완료해가고 있는 상태야. 한숨 덜었지~.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그렇지. 이쪽으로 소통을 시도해 온 워커가 있었어. 아까 봤던 거 있지? 뜬금없이 걔를 암시하는 말만 멋대로 남기고 가서, 그때 당시엔 정확한 정보가 없었던 터라 걔로 추측되는 것들을 제거하거나, 격리하거나 했는데.. 결국 쓸모없는 짓이었고, 일은 터졌고~. 그 뒤로는 짐작을 했을진 모르겠지만, 의견이 두가지로 나뉘어서~.. 의견 갈라진 다른 위선들과 적당히 타협 후에 끝내는 내가 널 토벌하러 계속 드나들었다, 이 말이지. 사실 시도는 이번이 마지막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네~.
라이너 에른스트:..이전 상황 설명은 여기까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네? 추가적으로 지금 상황도 설명을 해주자면.. 조만간 그들하고 피 터지는 전쟁이 일어날 거라, 괴멸한 남대륙을 제외한 세 대륙의 연합군이 모이기로 한 상태야. 그 전에 일반인 대피를 완료하고. 어쩌면 최후의 전투라고 불릴만한 걸 하러 가는 거지~.
체이스 크뤼거:그러니까. ....하. 그렇군. (긴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보인 반응이라고는 고작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썹을 들어올리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전부였다. 거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내 예상보다 더 고생했네. (이리 말로 정리하여 몇 마디의 설명으로 종료되었으나 그 길이 순탄치는 않았을 터였다. 당장 갈려버린 의견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말이다. 마지막이었다니, 제가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과거의 상황도 이해했고, 지금 상황도 이해했다. 큰 전쟁을 이어가면서 번외편으로 그 괴물이 말하던 수수께끼도 풀어야 한다는 거네.
내가 일을 여기로 끌고 왔다는 것을 알아채면 전쟁이 끝나고 날 먼저 처형하려 들겠는 걸. (조금 자조적으로 키득거린다.)
라이너 에른스트:(따로 추가적인 설명은 필요 없는 듯 보였기에, 팔짱 끼고서 바라봐요.) 말해줄 생각은 있고? 어차피 아는 건, 둘 밖에 없는데. (그의 자조적인 웃음에 픽 웃습니다.) 흠~.. 그러고보니, 괴물하니까 하는 말인데. 아까 말 혹시 어떻게 생각해?
체이스 크뤼거:난 말할 생각이 없지. (그리고 묘한 눈길로 널 바라보다 고개를 슥 돌렸다.) 괴물의 말이라면, 믿을만 한지 아닌지에 대해 묻는 건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말 뜻이 무엇인지?
라이너 에른스트:(그가 고개를 돌림에 부러 고개만 살짝 기울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전자. 마지막에 했던 말 있잖아. 그 말을 믿나, 해서~. 믿고 말고는 네 자유니까 내가 뭐라할 건 아니고, 생각이나 들어보게.
체이스 크뤼거:곧바로 믿을 수는 없지만. ..선택지가 없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행성을 멸망시켜온 것이 본인들이면서, 그러기 때문에 이 행성의 멸망을 막고 싶으면 저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뜻처럼 들리는데. 이용하려 한다 하기에는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자들 이라 생각해. 그러니까 결론은 이상하게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는 거지. ..너는 어찌 생각하는데?
라이너 에른스트:(가만히 체이스의 말을 듣습니다. 이어지던 말이 끝나고, 제게 되물어오면 그제야 입을 여네요.) 하기야, 그것도 그렇네. 나는, 뭐~.. 실은 별생각 없어. 내가 몸 던져가며 이 짓을 하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조금 모순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세상을 지키려고 한다기 보단, 할 게 이 뿐이라 하고 있는 것도 없지 않고. ..결국 말하자면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안한단 소리지~.
체이스 크뤼거:..넌. ..어째서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 거지? 왜 모든 것을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수긍하는 거냐. 예전부터 그래왔었잖아. (체이스 크뤼거는 도무지 눈 앞의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거짓말로 그를 끌고 와 둘 중 한 명을 가둬야 한다는 계획을 전했을 때도, 이윽고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알았음에도. 어찌하면 저리 한 발 벗어난 듯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사건에 가장 가깝게 연관되어 있는 이가 본인이면서.) 대체 왜?
라이너 에른스트:(갑작스레 훅 들어온,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동그랗게 뜬 눈만을 꿈뻑이며 체이스를 바라보다 시선을 내리깝니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치는 데. 그게 왜 궁금해? 그냥 그런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라 하면 그건 대답이 안되나?
체이스 크뤼거:(대답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인지 불만스레 고개를 기울인다. 당연하지 않냐는 듯 대꾸하는 어투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하지. 그리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였다면 굳이 묻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이제 와서 뭘. 더 다칠 것이 남았던가.
라이너 에른스트:(감정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늘 보이던 웃음기가 조금 사그라든 것을 보면 이쪽 또한 불만인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내리 깔았던 시선을 옮겨, 가만히 체이스를 바라보고) 마지막 얼마 안남았다고, 막나가는 모양이네. (당연하게도 말하며 보는 시선이 곱진 않아보이는 듯 했습니다.) 내가 전에 말한 적 없나?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내가 거기에 뭐라고 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거. 그러니 그런 것에 소모할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런거야. 괜한 감정 소모 싸움은 지긋하다고. 이제 됐어?
체이스 크뤼거:이것이 막나가는 걸로 보였다면 유감이야. 그랬다면 되려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겠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더 나아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너에게 대체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을 조용히 흘려내었다.) 그럼 너는 이 어쩔 수 없는 세계가 일단락이 되면. 아무튼 간에 어떠한 결말이라도 맞게 되면, 그 뒤에도 그리 지낼건가? 그저 휩쓸리며 살아있기에 사는 것처럼. (타박하는 것도 아니며 질책하는 어투도 아니었다. 순수한 의문임을 강조하는 듯 표정이며 톤에 고저가 없었다.)
라이너 에른스트:(짧은 조소를 흘렸다가 무미건조한 낯으로 체이스를 봅니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관찰을 제대로 못한 듯 싶네. 아마 평생을 봐도 모르겠다. (오히려 자신에겐 무관심이 더 나았던 쪽이기에.) 그럼, 어떻게 지낼까. 조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기라도 해볼까? ..뭐, 최고로 나은 결말을 맞이하기라도 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그 의문에 약간 건성인듯, 아닌 듯한 어조로 답했습니다.)
체이스 크뤼거:(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가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아무래도 평생 모르겠지. 자신은 그와 제가 비슷하다 느끼고 있었지만 그리하여 더욱 알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간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 보는 게 좋은 거 아닐까. 분노와 복수에 눈 멀어 있던 제가 그것을 놓고 나서 어찌되었건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 무엇보다 나은 것은 가장 나은 결말을 만든 후에 그곳에서 살아가 보는 거겠지만 말이야. 그리 된다면, 응. 차라리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잠깐 지내봐. (이 말은 농담이었을까? 하지만 체이스는 제법 진지하니 대꾸했다.)
라이너 에른스트:(그 말에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낯을 내비칩니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제법 진지하게 말하는 투에 어이를 상실했을까요.) ..참나, 그냥 한 말에 그렇게 답하는 건 너 밖엔 없을 걸. (그리 답하며 작은 숨을 내뱉었습니다.) ..됐다~. 다 태클 걸기엔 내가 더 피곤해지는 기분이야. 그렇게 말하면, 배는 안고프냐?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는 듯, 다른 말을 건냈네요.)
체이스 크뤼거:(말을 돌리는 모습에 짧게 웃다가) 조금 출출하기는 한데. 이곳에 먹을 것이 마땅히..있나? (군용 식품이려나. 그것도 오랜만일 듯 싶었다.)
라이너 에른스트:(체이스가 짧게 웃는 모습에는 대놓고 주제를 돌리려는 표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하기엔 안그래도 있는 피곤함이 배로 늘어나는 듯 했으니, 모른 척하며 대꾸합니다.) 밖에서 가져와야지. 여기 안에는 따로 쟁여둔 게 없어서~. (괜히 어깨 살짝 으쓱하더니 곧 조금 늘어트렸던 몸을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뭐~.. 그럼, 좀 기다려. 나도 출출하니까, 적당히 들고 올게.
체이스 크뤼거:그래. (끄덕, 하고는 별 말 없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리기로 했다.)
당신의 대답을 듣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막사 밖으로 나섭니다.
※:여기서 막사 내부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
조사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구간은 [간이침대], [테이블], [라이너의 가방]입니다.
체이스 크뤼거:(그가 나갈 때까지 얌전히 있는 척 굴다가.. 라이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라이너의 가방 부터 뒤져본다.)
가방 안을 보면, 급하게 쑤셔 넣어진 듯한 구겨진 옷가지 몇 개와 '수첩' 하나가 가방 안을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록은 디지털로 처리하는 시대에 수첩이라니.. 혹 그 날 이후로 따로 준비를 해둔 걸까요?
체이스 크뤼거:(이런 기록은 얼른 훔쳐보고 모른 척 가져다 놓아야지. 하여 라이너가 나가자마자 가방에 손을 댄 것이었다. ...너무 본격적인가? 하지만 5년만에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궁금한게 많을 뿐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수첩을 펼쳐보았다.)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수첩을 펼쳐서 내용을 보자면..
토벌을 몇 번정도 기록하다, 짧은 한 문장 뒤로는 더 적혀있지 않는 것이 보입니다.
그의 평소 행실을 생각해보면, 짧더라도 성실하게 기록을 남겼다는 게 더 놀라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체이스 크뤼거:(이거.. 제 던전을 공략할 때 쓴 수첩인가? 마지막 문구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하여튼. 글에서도 성격 보인다니까. ..뒤로는 기록이 없군. 이것도 녀석다워. (수첩을 닫고는 가방을 잘 정돈하여 원래 상태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테이블 을 살펴본다.)
테이블을 살펴보면.. '지도'로 보이는 것과 몇 가지 '문서',
그리고 마찬가지로 라이너의 것으로 보이는 '통신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체이스 크뤼거:(잠시 고민하다 문서 로 먼저 손을 뻗었다.)
잡다한 문서들입니다.
베모스가 지원받은 물자의 내역이 적힌 문서, 베모스 시민들의 이주를 허가하는 문서 등…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군요.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보아, 정리할 틈조차 없이 바빴던 모양이라는 감상이 들 뿐입니다.
체이스 크뤼거:흐음. ..하긴, 두 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었으니. 이래저래 빚을 졌어. (중얼거리며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베모스라..
각 대륙과 도시들이 그려진 지도입니다.
남대륙의 대도시인 '아샤'와 주변의 소도시들이 위치한 땅엔 붉은 X자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네요.
지금 당신이 위치하고 있는 북대륙에는 '베모스' 라고 표기된 글자 옆에 라이너의 서체로 쓰인 '폐쇄 예정'이라는 메모가 있습니다.
이어서 '죽음의 땅' 이라 불리는 각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협곡에는 'WALKER'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것이 보입니다.
체이스 크뤼거:(지도만 보아도 확실히 끝에 몰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샤에 이어서 베모스도.. 미약한 죄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선을 흘려 통신기 를 집어들었다.)
통신기의 화면을 켜보면 라이너가 누군가와 얼마 전까지 주고받은 듯한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감시와 보호... 썩 기분 좋게 받아들이긴 어려운 단어네요.
체이스 크뤼거: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였던가.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더니 곧 통신기를 내려놓았다. 뭐, 제가 지금껏 해 온 것이 있는데 감시 정도야 당해주어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애초에 이제 와 라이너에게 숨기는 것도 없고..) 어디보자.. (간이침대 로 향했다.)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어 보이는 간이침대입니다.
베개와 이불 또한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다는 듯 뻣뻣한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잠시 누워 눈을 붙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던 모양일까요?
잠시 침대에 앉아보면 간이침대 치고는 꽤 안락한 쿠션감이 느껴집니다.
체이스 크뤼거:(이불을 한 손으로 쓸고는 입구 쪽을 한 번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간이침대에 슬며시 누워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막사를 전부 둘러보고, 누워서 몇 분을 더 기다려보지만, 라이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느새 막사 내부는 구식 히터가 내뿜는 열기에 입김도 나지 않을 정도로 따듯해졌네요.
추위에서 벗어난 몸이 나른하게 늘어지고... 졸음이 찾아오는 것도 같습니다.
실로 얼마 만에 느껴보는 안락한 감각이던가요.
이대로 잠시 쪽잠을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어떻게 행동하나요?
체이스 크뤼거:이 녀석. ..음식을 사냥해 오는 건가? (왜 이렇게 안 와. 나지막하게 궁시렁거리다가 안락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도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절로 졸음이 쏟아졌다. 어차피 그가 오면 깨워주겠지. 워커가 온다면 싫어도 몸이 알아서 깰 테고. 그렇다면 아주 조금만 잠들어 보도록 하자.)
정말 어디서 사냥이라도 해오는 것일까요?
알 수는 없지만.. 잠시 잠을 청하며 라이너를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돌아와있겠죠. 설령 정말 사냥을 해왔다고 하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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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덜컹, 간이침대가 약간 흔들림에 비로소 잠에서 깨었을까요.
눈을 떠보면 말없이 당신을 내려다보는 라이너가 시선에 들어옵니다.
라이너 에른스트:잠이 잘 오나봐? (비아냥이라기 보단 그냥 궁금증으로 내뱉는 말이에요.)
체이스 크뤼거:..그러게. 이 와중에 잠에 들기는 하더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가 늦게 와서 그래. (아무렇지 않게 그의 탓을 하며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라이너 에른스트:그렇게 늦은 것 같진 않았는데. ..됐어~. (답을 듣고는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들고 왔던 걸 내려놓습니다.) 자고 일어났으면 더 출출해졌겠네. (그리 말하며 포장된 비스킷 하나 가볍게 던져줘요.)
체이스 크뤼거:(자연스럽게 받아들어 비스켓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포장을 까서 먹기 시작한다. 새삼 음식이 입에 들어가니 정말로 바깥에 나온 것이 실감되었다.) 심심해서 구경하다 몇 가지 살펴봤어. 지도라건가.. ..같은 거.
라이너 에른스트:(자신 또한 비스킷을 까서 똑, 한번 끊어 먹으며 체이스가 본 것에 대해 별 거 아니라는 듯, 대꾸합니다.) 지도 봤으면 알겠네. 여기 폐쇠 예정인 거. 그럼, 여기 오래 있질 못한다는 것도 대충 알려나?
체이스 크뤼거:그래. 얼추 알겠더군.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서. 아마 우리가 원하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이 그 괴물의 의견에 따라야 했을 거야. 어차피 최후의 전투인지 마지막 싸움을 위해서 한 곳으로 모이기도 해야 하잖아?
라이너 에른스트:(어깨 살짝 으쓱이고는 기지개 펴듯, 괜히 몸 쭉 늘려요.) 결국 그렇지~. 믿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뭐, 근데 바로 그쪽으로 가는 건 아니고. 서대륙 쪽에 들렀다 가야해. 거기 워커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나, 뭐라나~.. (그러며 작게 하품을 했네요.)
체이스 크뤼거:(이 대륙이 좁던가..잠깐 지도 보았다가, 참 여기저기 부지런하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서대륙인가?) 그래. 나야 뭐..네가 움직이는대로 따라 가겠다만. 서대륙이라.. 긴 전투를 생각하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라이너 에른스트:(흔쾌히 돌아온 답에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가) 생각보다 길지 않을 지도 모르지. 움직임이 그렇다는 거지, 거기서 싸울지 말지는~.. 뭐, 나도 가봐야 알겠네. (그러곤 음식 외에 챙겨온 다른 것을 접어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체이스 쪽으로 걸음 옮겨서는 그대로 앞에 서고, 건내줍니다.) 그럼, 바로 가게 옷이나 갈아입어. 결국 또 같은 위치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체이스 크뤼거:(고개 한 번 가벼이 끄덕이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오랜만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세상을 위해서라고는 하였지만 그 날의 자신은 어쩌면 많은 것들에서 회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갑작스러운 물음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 고뇌를 털어내며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가자.
라이너 에른스트:(대충 나가는 쪽 근처에서 비스듬이 서있다가, 가자는 소리 들리면 되게 빠르게 갈아입었다는 지금에선 별 쓸모 없는 잡생각을 잠깐 하다가 지우곤 막사의 천막을 올립니다.) 그럼, 슬슬 갈까~. ..아, 혹시 아직도 허기지거나 하면, 저거 챙겨가도 상관은 없고. (아직 남았을 테이블 위의 비스킷 몇 개를 보고는 말했네요.)
체이스 크뤼거:...? (그의 말에 잠깐 비스킷을 바라보다가 두 어개를 챙겼다. 그리고 그 수량만큼을 더 들고 와서 너에게 내민다.) 버리고 가는 것도 아까우니까.
라이너 에른스트:(제 쪽으로 내밀면 눈 두어번 깜빡였다가 이내 받아둬요.) 그냥 네가 다 가지고 있어도 됐을텐데. ..진짜 저기 있었다고 어디 좀, 이상해진 거 아냐? (체이스의 이런 행동이 낯선 듯, 살짝 당황한 낯이 드리우며 부러 제 머리 톡톡 건들며 이야길 했네요.)
체이스 크뤼거:허, 참. (저 라이너에게 당황한 표정도 짓게 하고 말이다. 헛웃음을 짓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챙겨도 된다고 언질을 주기에 너도 관심이 있는가 싶었지. 게다가 다 못 먹어. 입 안도 달고... 이동하는 내내~ 그리고 도착해서 계속 붙어 있을 것도 아니잖아? (물론 감시라는 말을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의 감시 란 어느 범위까지 뻗어나가는 걸까? 애초 그 임무를 진지하게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그런 의문이 번져나갔다.)
라이너 에른스트:(조금 어이없단 낯으로 체이스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래~. 그럴 건 아니지. 해줄 설명이야 다 해줬으니, 내가 계속 붙어 있어야 할 것도 아니고~. (숨을 짧게 한번 내쉬고는 먼저 한걸음 떼어 나아갑니다.)
체이스 크뤼거:그건. ..(눈을 데구륵 굴렸다. 이내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뒤를 따라갔다.) 그렇지.
..대화가 일단락 되고, 대륙을 이동할 열차가 있는 방향으로 두 사람은 걸음을 옮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5년만의 재회임에도 마치 바로 어제도 대면한 것처럼 구는 모양새는 역시 그이기에 당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떠려나요.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그 순간에도, 저 태도는 여전할까요?
록화. 다른 대륙들과의 교류가 가장 적어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진 서대륙의 대도시.
산에 둘러싸여 사시사철 푸름이 만연하기에, 가장 많은 생물의 종이 보존 돼 있는 푸름의 터전이라 불리는 곳.
베모스로부터 시작된 긴 여정 끝에, 두 사람은 그곳에 발을 딛습니다.
지하터널을 나서자 온 사방에 드리운 초록빛과 상쾌한 풀잎 향을 머금은 바람이 기분 좋게 당신을 반깁니다.
오는 열차 안에서 전해 듣기로, 이 도시는 2차 이변이 벌어진 이후에서야 본격적인 소통과 교류를 시작했다던가요?
체이스 크뤼거:(베모스와는 딴판이군..)
장엄한 자연에 잠시 시선을 뺏긴 채 있다 보면,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던 인영 하나가 두 사람을 불러옵니다.
반가운 기색으로 손을 흔들며 다가온 이는, 분명 면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억을 더듬어보면.. 라이너를 처음 만났던 날.
황무지 위로 피어난 정글 속 워커의 알에서 라이너와 함께 구출해냈던 헤이븐의 노아임을 기억해냅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헤이즐'이던가요?
체이스 크뤼거:...아. 여기서 다시 보는 군. .. ..(이름이 뭐였더라.) 헤이즐?
헤이즐:맞아요! 오랜만에 뵙는데도 기억해주시니 영광이네요~. (헤실 웃으며 대꾸하다 아차, 하더니 바로 표정을 싹 바꿉니다.) ..아무튼~, 두 분 다 반갑습니다. 원래라면.. 다른 분이 안내를 해드려야 하는데, 지금 다들 정신이 없는 터라 마침 시간 있던 제가 안내해드리게 되었네요~.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 나쁘진 않죠? (얕은 미소 띄며 말해요.)
체이스 크뤼거:(사실 그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름이 틀리지 않았음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리 사교성이 좋았던 이던가..) 최근 교류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생소한 곳이기는 해. (구경하던 시선을 멈추고는) 안내를 부탁하지.
헤이즐:음~.. 그렇죠. 그 교류 덕분에 제가 이쪽에 오게 된 것이기도 하고~. (살짝 눈치를 보는 지 괜히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서는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하하, 제가 너무 붙잡고 있었네요~. 그럼, 안내해드릴게요!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기는 이쪽이랍니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와는 사람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지금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기라고 한 건가요?
방금 막 지하터널에서 지상으로 빠져나왔는데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니요?
체이스 크뤼거:지하?
헤이즐:(체이스의 말소리에 잠시 멈춰 고갤 돌렸다가) 네, 지하요. 음.. 일단 가보시면 알아요~. (멋쩍게 웃으며 말하고는 다시 둘을 안내하듯 걸음을 옮겼네요.)
체이스 크뤼거:(말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대체 여긴..)
자세한 것은 듣지 못한 체, 다시 헤이즐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이끼 덮인 바위 틈사이로 교묘하게 가려진 투명한 유리 상자가 나타납니다.
투명한 외벽 덕에 내부 구조가 훤히 보이는 것을 살피면 아까 언급된 승강기가 맞는 듯한데...
헤이즐:..아, 맞다! 이거 생각보다 꽤 내려가야 해서.. 면역이 없으시담, 멀미가 조금 나실 수도 있어요. (제일 중요한 사항인 부분인 듯 말을 이제야 언급하며 먼저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네요.)
체이스 크뤼거:멀미 정도야 괜찮지만. (그래도 제가 인간이 아닌 몸뚱이에 부활까지 하는데 멀미가 대수는 아니었다. 아마 라이너도 같겠지. ..그러면서도 슬그머니를 그를 돌아보다가 곧 승강기에 탑승했다.)
..세 사람 모두가 내부로 들어서면, 곧 승강기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완전히 땅 밑으로 내려가 외부의 빛이 차단된 것도 잠시, 이내 투명한 외벽 너머로 펼쳐지는 광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모습입니다.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암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엔 고층 빌딩은 물론,
다른 도시의 것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발전한 도시단지와 푸른 나무들이 즐비하게 솟아나 있습니다.
도시를 감싼 암벽을 타고 자라난 듯 보이는 거대한 나무줄기들이 허공으로 뻗어져 도시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헤이즐:(시선이 밖으로 옮겨진 상태로 입을 엽니다.) 저 천장은 아주 오래전 식물을 다루던 노아가 만든 거래요, 워커 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요~. 도시를 둘러싼 암벽 덕분에 워커의 침입도 쉽지 않고요. 실제로 워커의 공격을 받은 횟수도 드물대요. 어쩌다 발을 헛디뎌서 도시로 떨어진 워커만 몇 마리 있었다던가? 뭐.. 지상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숲으로 보이니까요~.
체이스 크뤼거:굉장한 걸.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마치 요새를 보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5년이 지나 워커가 더욱 즐비하는 시대에 이런 도시가 존재할 수 있음이 인류의 끈질김과 삶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감상하며 돌아다닐 때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워커에 대한 설명은 이후 해주겠지. 일단은 차분하게 마음을 먹으며 헤이즐의 뒤를 계속해서 따랐다.)
헤이즐의 설명과 함께, 숨겨져 있던 도시의 내부를 눈에 담으며 한참을 내려갔을까요?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문이 열립니다.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인지 문밖으로는 복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헤이즐:(승강기 밖으로 나선 뒤 두 사람을 보고는 운을 뗍니다.) 음~... 우선 간단하게 이곳 상황부터 보고 드릴게요. 워커 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건 사실이지만 어제 05시를 기점으로 전부 사라졌어요. 도시 반경 2km 내를 정찰했지만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상하긴 하지만... 저희 입장에선 잘 된 일이죠. 위협이 사라졌으니, 시민들은 계속 도시에 남아 있기로 결정됐어요. 이미 다른 도시의 시민들이 이주해 온 상태라 도시는 포화상태에요. 이 많은 인원을 전부 수용할 곳도 없을 테니까요. 도시를 떠나는 건 연합군에 합류할 예정인 군인들뿐이라더군요.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간단하게 본인 확인만 하고 바로 숙소로 모실게요. ..참, 방은 하나인데 괜찮으시죠? 아시다시피 이주민들을 수용하느라 사람은 넘쳐나고 지낼 공간은 부족한 상태라서요~. (그리 말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띄웠네요.)
체이스 크뤼거:(설명을 들으며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확실히 포화가 될 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좋을 것 하나 없어 보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쩌랴.) ..문제를 일으키던 것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라. (무언가 찝찝했다. 언제 일이 수월하게 풀린 적이 있었던가? 고민하느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표정이 풀어진 것은 뒤늦게 헤이즐의 안내를 들은 후였다.) 방이 하나? ..뭐, 그래. (하며 라이너를 돌아본다.) 어쩔 수 없다는데.
라이너 에른스트:(고개를 삐딱하게 하고서 보고를 듣고 있다가, 돌아보는 시선과 말에는 살짝 어깰 으쓱여요.) 그래~. 어쩔 수 없다는데, 내가 별 수 있나? 일단 쉬고나 싶으니까, 갈까~. (얼른 안내나 해달라는 듯, 헤이즐을 바라보았네요.)
라이너의 말이 끝나고 헤이즐은 멋쩍게 웃다가, 곧 두 사람을 안내합니다.
간단한 본인 확인 절차를 마치고, 헤이즐을 따라 숙소라는 곳으로 향하면, 생각보다 호화로운 방에 도착합니다.
마치 호텔을 연상시키는 내부는 두 사람이 잠시 지내기엔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군요.
헤이즐:..아, 그렇지. 쉬고 계시면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두 분을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셔서요~.
자기 할 말을 마친 뒤, 곧 짧은 경례를 하고선 헤이즐은 두 사람을 남겨두고서 방을 떠납니다.
라이너 에른스트:(헤이즐이 떠나는 것을 보고는 먼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을 건냈네요.) 근데 아까는 왜 굳이 보면서 말한 거야? 알아서 그러려니 했을건데.
체이스 크뤼거:아까? ...방 이야기 할 때? (방 내부를 가볍게 훑으면서 대꾸했다. 그래도 상급자라고 이렇게 좋은 방을 내어주는 걸까. 이 정도면 딱히 두 명이서 지낸다고 해도 큰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 5년 사이 날 꺼려하는 기색이 좀 수그러 든 것 같기는 하지만, 원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피곤한 이랑 같은 방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전할겸. 그냥 ..(그러게. 어째서였더라.) 반응이 궁금했을 뿐이야.
라이너 에른스트:(체이스의 말에는 수그러 들었나? 생각하며 대충 제 짐을 놓아둔 뒤에) 뭐,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다짜고짜 다른 방을 내어달라고 할 순 없잖아. 그렇다고 귄위 휘두르는 것도 싫고. (팔짱을 끼고, 조금 삐딱한 자세로 보며 담담한 어조로 답합니다.) 정말 별걸 다 궁금해 하네. 혹시 예상한 반응은 뭐였는데? 있으면 들어나 보자.
체이스 크뤼거:(그는 라이너를 만난 순간부터 그의 행동이나 생각을 예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진작 깨닫고 있었다. 라이너의 아버지가 저에게 했던 행위에 대하여 진실을 털어놓았을 때부터 시작하여 그를 속여 북대륙으로 데리고 온 순간까지 말이다. 때문에 이런 물음에 솔직하게 답할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여 고민하느냐 침묵이 길어졌다.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제 짐을 간단하게 풀어 정리한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하는 것? 내 예상보다 네가 좀 덤덤하기는 했지. 답하고 보니 방금 했던 대답도 조금 정정해야 할 것 같네. 네 반응을 통해 변한 것이 있나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 세상이 지루하고 심심하면, ...나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극을 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게 그나마 재밋거리가 되거든.
라이너 에른스트:(여전한 자세로 체이스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말이 끝난 듯 싶으면 그제야 입을 엽니다.) 흠~.. 내가 이야기 하라곤 했지만, 막상 들어보니 뭔가 좀, 별로긴 한데. 광대라도 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재밋거리는 됐나?
체이스 크뤼거:뭐. (그의 가방에서 메모를 찾았을 때부터 재미야 충분히 충족되었지만.. 이것만큼은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 광대라고 생각하지 말아. 아무튼 한 사람 인생에 이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나름 .... ...아니, 귀찮은건가. 그래도 별 수 없어. 넌 네 아버지대에서부터 나랑 귀찮게 얽혀버렸으니까. (내부를 둘러보던 그는 곧 위스키 한 병과 잔 두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슬그머니 그것을 들어 보인다.) 한 잔 할래? 난 오랜만에 나왔더니 마시고 싶은데. (제안을 하면서도 딱히 거절 의사는 받지 않겠다는 듯 혹은 거절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듯 잔 두 개를 테이블에 놓고는 이제는 얼음까지 찾고 있었다.)
라이너 에른스트:허, (아버지, 라는 단어에 숨을 짧게 내쉬었다가) 진짜 도움 안되는 작자라니까. (괜히 한손으로 휘휘, 내저으며 말하다가 한 잔 하자는 말에 동그랗게 뜬 눈을 한번 꿈뻑였다가) 이런 상황인데? 참 너도 별나네. ..뭐, 거기에 응해주는 나도 별나나? (마치 자신이 거절하지 않을 걸 안다는 듯이 자연스레 제 몫의 잔까지 준비한 것을 보며 픽 웃고는 테이블 쪽으로 가, 먼저 자리에 앉습니다.)
체이스 크뤼거:(그 사이 기어코 얼음을 찾아낸 그가 통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잔이 제법 크니까 .. 그냥 넣지 뭐. 싶은 기분으로 얼음을 컵에 넣고는 그 위로 위스키를 따른다. 독한 향이 방 안을 순식간에 메웠다.) 이런 상황이니까. 고작 위스키 한 병으로 나가 떨어질 것도 아니고. (맞아, 너 별나. 그런 눈으로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개인적으로는 네가 좀 취하는 편이 더 이득이기는 하지만.. (달그락, 하며 잔을 가볍게 저었다.)
라이너 에른스트:5
체이스 크뤼거:5
라이너 에른스트:(테이블 위, 제 몫의 잔을 들고서는 한모금 마시려다 뒤이어 들린 체이스의 말에 고갤 살짝 기울였습니다.) 왜, 취한 사람한테 듣고 싶은 거라도 있나봐? (그리 말하며.. 그러고보니 이렇게 둘이서 한 잔하게 되는 일은 영영 없을 줄 알았더니,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 혼자 그리 여깁니다.)
체이스 크뤼거:(물음에 너를 가만 바라보다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먼저 술로 목을 축인다. 무척 오랜만에 강한 알코올이 넘어왔다.) 듣고 싶은 건 있겠지만 뭘 듣고 싶은 것인지는 몰라. 다만, ..알잖아? 취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입이 가벼워지는 거. 다른 말로 하면 솔직해진다는 거지. 큰 싸움이 일어나면 둘 중 하나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 이런 자리 정도는 괜찮잖아. (그러는 너는 왜 흔쾌하게 응해주었냐 묻고 싶었으나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 물음을 삼켰다.)
라이너 에른스트:(여전히 기울이고 있던 고개를 바로 하고서는 이제야 한모금 입에 담고서는 삼켜낸 뒤에 입을 엽니다.) 솔직한 것도.. 뭐, 그렇긴 하겠지만. 주사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설령 내가 정말 약해서, 여기서 싸움이라도 벌이면 어쩔건데?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부러 그리 말하며 낮은 웃음 소릴 흘리고) 그렇지. 나도 이런 자리가 싫단 건 아니야. 다만 네가 먼저 권유할 줄은 몰랐던 거지. 한다 해도, 음... 내가 할 줄 알았는데~. (잔 끝을 검지로 톡톡, 건들며 답합니다.)
체이스 크뤼거:그럼 다른 의미로 한 쪽이 기절할 때까지 밤을 새가며 놀아야겠지. (너무 급하게 마시지 않기 위해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그러다 의문 섞인 눈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뭐? ..네가 권유할 줄 알았다니 그게 더 의외인데. 우리는 서로를 참 박한 이미지로 잡아두고 있던 모양이야.
체이스 크뤼거:네가 주사를 부릴 정도로 취한다는 것도 잘 상상 안 가고 말이야. 애초에 그 자리에 오른 뒤로 누군가랑 시간내 마셔본 적은 있고? (곰곰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때 같이 임무를 진행했던 대원들이랑은 자리를 가졌으려나.
라이너 에른스트:(그 말에 부러 쿡쿡 웃었다가 다시 한모금 마셔요.) 만약이라는 가정이었지만~.. 그러게. 서로가 해줄거라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는 게, 참. 이런 건 또 생각이 비슷한 것도 같고~. (그러다 뒤이어 들린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고 고개 살짝 내젓습니다.) 네 말대로. 그런 적은 없지. 음~.. 걔들하곤 한두번은 가졌나, 옛날에? 그때.. 뒷처리가 힘들었었던 것도 같고~. 그럼, 너는.. ..아, 이건 물어보나마나 인가? (말을 마치며 잔을 내려놔요.)
체이스 크뤼거:(네가 잔을 내려놓는 타이밍에 맞추어 잔을 들어올렸다.) 맞아. 물어보나마나야. 필요할 때가 아니면 누구랑 같이 마신 적 없어. 과거 부하들도 굳이 불편한 상사랑 말 섞고 싶지는 않았을테고. (이런 부분에서는 저에게 지옥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던 그들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었다. 자기는 한 번도 이 세계가 아름답다거나, 지키고 싶다거나, 온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일이 다 끝나고 네가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면 .. 그 때도 내가 살아있다면. 귀찮은 일은 맡아줄게. 버리고 떠났다가 돌아와도 상관없어. (또 한 모금 술을 들이켰다. 금방 빈 잔의 바닥이 드러난다.) 술을 든 이유가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겠네.
라이너 에른스트:(그 말에 어깨만 살짝 으쓱이고선, 지그시 잔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가 입을 엽니다.) 그렇게 말 안해도 그럴려고. 물론.. 일이 좋게 잘 마무리가 되어야 할테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과하게 굴려졌으니까, 무기한 휴가가 필요하다고. 음~.. 짬짬히 쉴 때, 어디 갈지 생각도 좀 해둘까? (부러 가벼운 어조로 답하며 작게 웃음 소릴 흘립니다. 하는 말의 반은 진심, 반은 농담이겠네요. 그리고 잔 안의 얼음을 잘그락, 굴렸다가 남은 술을 마시고서 다시 내려놓습니다.) 그럼,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걸로 끝이야?
체이스 크뤼거:넌 안타깝게도 성실하니 말이야. (저리 말을 하면서도 정말 생각해 두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기습적으로 장소를 질문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위로 도르륵 굴렸다.)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너는 아마도 딱히 하고픈 말 같은 건 없겠지.
라이너 에른스트:성실이라..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자신에겐 붙지 않을 것 같은, 계속 거리만 뒀을 듯한 단어가 저 입으로 나오니, 절로 동그랗게 뜨여진 눈을 꿈뻑이며 바라봤습니다.) 음, 하고픈 말이라~.. 물론 지금은 없지. 뭐.. 나중이라도 생기고, 내가 마음이 내키면, 그때 할게. 있을려나, 싶지만~. (그러며 기지개를 한번 쭉 폈다가) 그럼.. 나는 가서 좀 자기라도 할까~. 오늘 얼마 잤는지도 모르겠네.. 넌 이제 뭐할거야?
체이스 크뤼거: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아무튼 도망치거나 내팽겨치지 않고 거기 그 자리에 있잖아. 내가 있는 곳까지 깨고 들어오기도 했고. (과정은 짜증났겠지만 말이다..) 난, (하고는 잠시 문 쪽을 바라보았다. 곧 한숨을 쉰다. 가장 하고픈 일은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지만 지금은 얌전히 있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했다.) 혼자 몇 잔 더 마시고 잘게. 먼저 자. 지금 누워봤자 정신이 과하게 선명할 것 같으니까.
라이너 에른스트:(그런 게 성실이면 세상 누구라도 성실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가벼히 듣고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래~. 그럼, 난 먼저 자러간다~. 주량이 얼마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알아서 조절하고. ..너야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러며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겨 갑니다.)
체이스 크뤼거:(자리로 돌아가는 널 흘끔거리다가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아마 기분 내키는대로 새벽까지는 마시다 잠들지 않을까 싶었다.)
(몇 잔까지 마시고 잠들었으려나.. 2)
서로 간의 가벼운 술자리를 가지고, 당신 또한 잠에 듭니다.
...그렇게 얼마나 잠에 들었을까요?
당신의 잠을 깨우는,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는 벨 소리가 현관으로부터 들려옵니다.
그러고보니.. 전에 헤이즐이 말했던 사람의 방문일까요?
체이스 크뤼거:...... (잠시, 이제 술 마시고 잠들었는데. 침대가 저를 붙잡는 손길을 애써 무시하며 방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조금 열어 그 틈으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다.)
당신이 문을 열어 확인하면, 옷 품이 넓은 이국적인 차림을 한 중년의 여성이 서있습니다.
여성은 늦은 밤 실례를 한다며, 정중한 사과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갈 것을 허락해달라는 듯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체이스 크뤼거:아. ...흐음, 그럼 잠시 기다려주시죠. 일행이 잠든 참이라. (건네지는 사과에는 가벼이 고개 숙이는 것으로 답하고는 다시 방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라이너를 흔들어 깨운다.) 이봐, 라이너. 손님이야.
라이너를 깨워보려 다시 안으로 들어가 그의 자리로 가면, 이미 그는 자리에 없는 것이 보입니다.
테이블 위에 둔 통신기가 사라진 것을 보면.. 아무래도 얼마 자지 못하고 연락에 나간 듯 싶네요.
체이스 크뤼거:...(뭐야. 별로 혼자 상대하고픈 상황은 아닌데. 한숨 쉬며 결국 문을 열어주었다.) 내부가 그닥 깨끗하지는 못하지만, 괜찮으시다면 들어오시죠.
당신의 말에 조심히 안으로 들어선 여성은 방 내부에 당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꼼꼼히 확인한 뒤에야 다시 입을 엽니다.
체이스 크뤼거:(수상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며 무슨 말이 들려올지 가만 기다렸다.)
중년 여성:(숨을 한번 내쉬고, 시선은 당신에게로 향한 체, 말을 건냅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 이야기는 기밀로 취급되고 있답니다. 록화는 이 이야기가 도시의 외부로, 특히나 당신과 에른스트님에게 전해지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아요... 따라서, 지금부터 들으실 이야기를 에른스트님을 제외한 타인에게 발설하는 일은 삼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도시에는 오래전, 미래시 능력을 가진 분이 계셨죠. 15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남겨둔 미래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어요. 우린 그 기록 덕분에 다가올 사고나 재해에 대비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죠. 하지만 그분이 남겨둔 미래의 기록이 전부 현실로 일어날수록 우린 두려워졌습니다. 그분이 내다 본 미래는 올해의 기록을 끝으로 없었거든요. 어쩌면... 그분이 남은 미래를 미처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걸 수도 있지만,... 이후의 미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에 볼 수 없었던 걸 수도 있죠. 저를 포함해 기록을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을 막기 위해 기록을 은폐해버렸어요. 물론, 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크뤼거님을 찾아온 건 아닙니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은폐된 나머지 기록에 당신과 에른스트님의 성함이 언급되기 때문이에요. 일부 기록은 추상적이 거나 극히 단편적인 부분만 적혀있는 경우가 있어서 정확한 의도나 뜻을 알 수 없어요. 기록엔, 그저 두 분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록화에 걸음하니, 주문을 손에 넣을 것이다.' 라는 문장이 적혀있었을 뿐이니까요..
말을 마친 여성은 품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로 내려둡니다.
여성이 내려둔 물건을 보면 금속 재질의 납작한 원형 물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아래로 찢겨진 종이 한 장이 보입니다.
체이스 크뤼거:(긴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따로 보고싶다 했던 걸까. 그래봤자 미래시가 남긴 저 오묘한 문장이 전부인 것을.) ...일단, 알겠습니다. (주문이라니. 하고 중얼거리며 시계처럼 보이는 물체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메모를 본다. 인상을 찌푸린채로 한참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대충 ... 말 하는 것이 전부 이루어진 높은 수준의 미래시 능력자가, 저와 라이너가 록화에서 주문을 얻을 것이라 예언했다는 것이죠. 관련된 물건이 이것이고. (그리고 상대를 바라본다.) 우리가 가져올 미래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이리 다짜고짜 정보를 주어도 되는 겁니까. 게다가...이건 무엇인지.
중년 여성:주문이 적힌 종이에요.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러며 시선을 잠시 피합니다.) ..저는 기록에 따를 뿐이고, 당연히 두 분께서 가져올 미래도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어야 겠죠.. 그리고.. 이미 오래 전에 누군가가 내다 본 미래, 꼭..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이 주문을 전해드렸을 겁니다. ..이것을, 신중하게 사용하시길 바래요. 일전에.. 이 주문을 사용하려 했던 사례가 있지만, 전부 결과가 좋지 못했거든요. 너무 과거로 돌아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이도, 너무 미래로 나아가 백골 시체가 되어버린 이도, 살아남았지만 정신이 무너져 미쳐버린 이도 있었으니까요. ...늦은 시간에 너무 오랜 시간을 뺏었네요. 그럼, 이만 돌아가 볼게요.. (그리 말하며,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듯한 눈으로 다시 시선을 마주합니다.)
체이스 크뤼거:(참 현실감 없는 정보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치면 자신의 존재가 제일 현실감 없다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납득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사례가 있었군요. 그렇다면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 주문에서 말하는 신체가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은... 제가 어린아이의 몸이 된다거나, 노인이 된다거나, 죽기 전의 상처를 입었을 때 상처입지 않은 몸으로 돌아간다거나. 그런 걸 말하는 겁니까?
중년 여성:(그 질문에.. 말한 것이 맞다는 듯, 고개를 짧게 한번 끄덕였습니다.)
체이스 크뤼거:하아. 이게 다 뭔지. (묘한 눈길로 종이를 바라보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아 들었습니다. 확실히 이해도 했고. ..그가 오면 저희끼리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죠. 더 당부할 말씀이 없으시다면 ..조심히 돌아가시길.
당신의 말이 끝나고, 다시 한번 더 인사를 건낸 뒤에서야 여성은 방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닫혔던 문이 몇 분체 지나지 않아 다시 열리더니, 라이너가 방에 들어섭니다.
라이너 에른스트:(방에 들어서며 일어나 있는 체이스를 보고 한박자 늦게 반응해요.) 깜짝아. 언제 일어났대? ..아,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그러니까~.. 연합군의 출전 준비가 끝났다고 그러네? 원랜 조금 더 시간을 들일 생각이었는데, 워커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동대륙 주변의 워커들도 전부 중앙으로 몰려갔다는 모양이야. 이 이상으로 다른 도시가 파괴되는 건, 아무래도 곤란하니까~. 록화도, 방주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슬슬 한계치라서. 여튼, 그래서 워커가 도시를 공격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기로 해서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니, 준비하라고 하려 했는데~.. 뭐, 그럴 필요 있나? (자기 할말을 마치고선 체이스를 바라봐요.)
체이스 크뤼거:상황이 복잡하군. 의논할 일이 생겼는데 ...(지금 이야기를 나눠도 되나. 준비할 여유 정도는 있는 모양이니 그 시간을 사용하기로 하며 라이너에게 쪽지와 시계처럼 보이는 물건을 내밀었다.)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손님이 왔어. 기밀사항이라 너와 나 말고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된다더군. 록화의 과거 미래시 능력자가 우리가 주문을 손에 넣을 것이라 말했다네.
거기서 말한 주문이 그거인 것 같아. 대체.. 신체를 변화시켜 어디에 써 먹으라고 이런 걸 우리에게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면 한 번 살펴 봐. 여유가 없다면 이동하면서 이야기 나눠도 좋고.
라이너 에른스트:(체이스가 내밀면 그제야 물건과 종이의 내용을 짧게 확인하고 다시 돌려줍니다.) 흐음~.. 차라리 가면서 이야기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여기서 여유가 그리 많지도 않고, 애매하니까~. 더군다나.. 열차가 지금 대기 중이라~. (그러며 어깨 살짝 으쓱해요.) 그래서, 짐만 챙기고 나오라고 한 말이었어. 준비 이야기는.
체이스 크뤼거:아, 사람 굴리기는. 어쩔 수 없지. (짧게 중얼거리면서도 얌전히 별 없는 짐을 챙겼다. 종이와 시계는.. 품에 잘 넣어둔다.) 좋아, 나머지는 가면서 이야기하지.
라이너 에른스트:(괜히 고개 살짝 내젓다가) 그래도 이제 이 짓도 곧 끝이니까~. (그러며 대충 박아둔 제 짐을 다시 챙긴 뒤에) 그럼, 가볼까~. (먼저 문을 열고 한발짝, 앞섭니다.)
체이스 크뤼거:(뒤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서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두 사람은 다시 도시를 떠나기 위한 지하 열차로 향합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열차의 소음입니다.
그러고 보면, 수백 명이 탄 열차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하네요.
아무리 당신이 개인실 안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복도를 나가봐도 들려오는 것은 차체의 소음뿐입니다.
그도 그럴 만 하죠. 열차에 올라탄 모두는 다시 자신들의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이 열차는 말 그대로 '죽음의 땅'으로 향하고 있으니...
라이너 에른스트:(아까의 방처럼 공용으로 받은 것은 아니나,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으니 아예 들어올 때 이쪽으로 당당히 들어왔네요.) ..그래서, 아까 뭐라고 그랬더라? (아무렇지 않게 그 맞은 편에 앉아, 방에서 미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말하는 듯 한마디 건냅니다.)
체이스 크뤼거:(편안하게 앉아 턱을 괴고는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품에서 시계를 꺼내 한 번 흔들어보였다.) 이걸. ...어찌저찌 이용해서 주문을 외우면 우리 신체가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더라. 잘못 사용하거나 과하게 사용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갇히거나 정신이 뭉개지는 모양이야. 자아를 유지하지 못해 술자가 지워진다니 리스크가 꽤 크지. 이 주문을 우리가 얻는 것이 미래의 예언 속에 있었다는데. 네 의견을 묻고 싶어.
라이너 에른스트:(가만히 체이스가 하는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조용하더니) 음.. 그럼,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은 필연이나 마찬가지란 소리도 되네. 원래 그런 거 안믿는데, 조금 소름이 돋는 것도 같고~. (부러 가벼히 말하며 팔을 한번 쓸어내렸다가) ..뭐, 그치만 깊게 생각할 필요 없겠지. 예언 때문이든, 아니든, 주문은 얻었고. 우리야 쓰든가, 쓰지 말던가, 단지 그 뿐인 거 아니겠어?
체이스 크뤼거:(네 말을 듣고는 가볍게 피식 웃었다.) 명확하네. 맞아, 그게 전부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어. ..때가 되면 쓰고, 아니면 그만인 그런거야. 아무튼 손에 무기가 하나 쥐어지니 그나마 안심이 좀 되는군.
라이너 에른스트:(괜히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가) 너는, 그..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 좀 줄이면 생각이 더 유연해졌을텐데. 때때로 그런 것도 필요한 거긴 하지만? (그리고 잠깐 말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갑니다.) 근데 만약 써서 성공하면 어떻게 될 지는 조금 궁금할지도 모르겠네. 물론 도박이고, 굳이 안써도 된다면 안하는 게 낫겠지만~.
체이스 크뤼거:~..이렇게 살아와서 말이야. 대신 네가 가볍게 생각해주면 되잖아. 넌 생각 끊어주는 것도 꽤 잘하니까. (습관처럼 또 고민을 하다가 퍼득 어깨를 움찔거렸다. 헛기침을 한다.) 넌 도박을 즐기던 스타일이던가.
라이너 에른스트:은근슬쩍 귀찮은 걸 맡기네. 알아서 할 순 없고? ..하기야 늘 그랬는데 바로 바꾸라고 해도 무리긴 할려나~. (고개 살짝 기울이고서 체이스를 바라보다가) 음~.. 재밌다면? 너는 별로 즐기는 타입은.. 아닐 것 같은데. (맞지? 하는 눈으로 바라봤어요.)
체이스 크뤼거:알아서 못 해. (뻔뻔하게 대꾸했다.) 너도 바라는게 있으면 말해도 좋아. 물론, ...말할 것이 있다면 말이야. (라이너는 가벼운 듯 보여도 스스로에 관해서는 무척이나 입이 무거운 자였다. 체이스는 그의 입에서 어떤 부탁이나 상담 같은 것이 나올 일은 없다 생각했다.) 나야 아니지. 도박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목숨거는 것처럼 비장해지거든.
라이너 에른스트:(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도 뻔뻔한 면은 있었던 거 같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인지 손해보는 건 나같단 말이지? (헛웃음을 짧게 흘리고) 그래. 그럴 일이 있다면야. 음.. 잘 생각해보면, 이 일이 끝나면 부탁할 일이 있을지도~. (다시 웃음기를 가라앉히고는 물끄럼 바라보다가) 나랑은 안맞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거 같지만~. 목숨을 거는 도박은 그닥이지.
체이스 크뤼거:(부탁할 일? 고개를 슬그머니 기울이는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의아함이 드러났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알고 있었잖아. 너랑 나랑 지독하게도 맞지 않는 거. 다만 봐, 우리도 어느정도 맞는게 있어. 의외로 성격이 잘 어울리니 이리 앉아 대화도 나누는 거 아니겠어?
목숨을 건 도박이 필요한 순간에는 내가 나서. 그러니 너는 언제나 승패만을 바라보도록 해. 그게 너 다우니까. (비꼬는 말은 아니었다. 어쩐지 라이너가 저와 같이 비장하게 도박에 뛰어드는 모습은 이질적이라,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이너 에른스트:(체이스의 말에 잠깐 생각해보다가 부러 짧은 숨을 내뱉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냥 보면 안맞는 거 투성인데 말이지. 아마 이런 만남이 아니었어도 비슷했으려나, 싶기도 하고~. 음... 네가 본 나로썬, 그게 나 다운가? 사실 나 답다는 게 아직까지도 뭔지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근데 목숨을 그렇게 휙휙 내놓는 건, 원래 그런 쪽? 아니면 살다보니 바뀌기라도 한 건가?
체이스 크뤼거:이런 만남이 아니었다라. ...그랬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았고,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을테니까.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이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제 과거와는 별개로 라이너는 믿을만한 동료였으니 말이다.) 이런 몸이니까. 상관이 없어진거 아닐까. 불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거 이상하잖아. 언젠가 끝이 있기에 두려움과 동시에 평온도 있는 거야.
아, 생각해보니 이제 너도 불사지. 내 마음이 좀 이해가지 않나?
라이너 에른스트:하하, 확실히 그랬겠네~. 이렇게 엮일 일 자체가 없었을테고. 아마.. 그냥 지나가는 사람 1 정도, 아니면 기억 자체에도 없다든가, 했겠는걸. (작은 웃음 소리를 흘리다가 멈추고) 음~.. 하지만 고통이 또 없진 않으니까. 그리고 원래 사람이란 게 불사가 되어도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나, 죽음에 대한? (아닌가? 혼잣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 말고) 뭐~.. 지금은 잘? 근데 이 삶을 좀 더 살아보면. 그땐 조금 이해를 할 지도 모르겠네. 아직 얼마 안살아봤잖아~.
체이스 크뤼거:아, ..그런가. 그럴지도. (죽는게 좋은 건 아니었다. 죽는 것이야 당연히 싫지만, 그것이 또 피하고 싶어 안달할 정도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미 저는 고통도, 삶의 끝도 다 보아버렸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는 더더욱 고통스럽지 않았으려나.) 이 일이 잘 풀리면 불사의 저주도 같이 풀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보지.
라이너 에른스트: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사실 이런 삶에 대한 인생 계획을 세워둔 게 아직 없어서. 돌아가는 편이 더 좋거든. 뭐~.. 게다가 무한의 삶은 지루하기도 할테고. (어깨를 살짝 으쓱하고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곤) 그러고 보니 이 열차, 도착하는 데에 이틀정도 걸린 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동안 뭐할지 생각은 해봤어?
체이스 크뤼거:그렇게나? (...하긴. 대륙이 워낙 넓어야지. 어쩐지 불안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길었다.) ...딱히. 난 이제 막 나왔으니 할 일도 별로 없고. 시킬 게 있다면 말해. 도울테니까.
없다면, .....(잠이나 자나?)
라이너 에른스트:아무래도 거리가 좀 된다고 하던가~.. 흠... 그런 건 나도 딱히 없는데. 뭐, 잠이라도 더 청하던가~. 나는 그럴려고. 누구와는 다르게, 잠을 잘 못자서~. (턱 괴고서 부러 작게 웃음 짓습니다.)
체이스 크뤼거:(그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포즈를 따라할 뻔 했다. 눈을 흘끗 반대쪽으로 돌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좋네. 좀 자둬. 도착한 이후에는 한 숨도 못잘지도 모르니까.
라이너 에른스트:(그 상태로 물끄럼 체이스를 바라보다가 짧게 하품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래~. 그럼, 내일 다시 봐. 난 내 방으로 돌아갈테니까~. 정 심심하면.. 깨워도 좋고. 뒷감당은 해야겠지만~.
체이스 크뤼거:(알겠다고 말하는 듯 고개만 또 끄덕였다.)
서로 간의 짧았던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 길다면 긴 휴식시간을 보냅니다.
이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말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을지 모르니까요.
이틀 동안 열심히 달린 열차는 멈추고, 도시를 떠나온 수십 대의 열차가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하며, 수만 명의 군사는 전장 위로 오릅니다.
창백한 색으로 죽어버린 땅. 무채색만이 가득한 평야 아래로 드리운 거대한 협곡이 보이네요.
저 아래로는 워커들의 주둔지가 있을 겁니다.
죽음의 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은 대지와 온기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함. 하늘마저 먹구름을 드리웠군요.
워커들과 구분되기 위해 일제히 검은 제복을 입은 연합군이 회색 땅 위로 열을 맞춰 섭니다.
전방은 전투계 노아들로, 후방은 무기를 사용한 지원사격이 가능한 비전투계 노아와 일반인이 섞인 대열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앞에 라이너, 그리고 체이스. 당신이 자리합니다.
연합군 총지휘관이라는 명목이던가요?
비록 존재 자체만으로 워커에게 먹이를 제공해줄 수밖에 없는 신세지만,
방주는 물론 다른 도시를 통틀어서도 라이너와 당신만큼 강한 존재는 찾을 수 없으니 당연한 처사일 수밖에요.
정렬을 마친 연합군은 모두 전방에 선 두 사람을 응시해옵니다.
라이너 에른스트:뭔가 연설이라도 해야될 것 같은 분위기네~. (이런 분위기가 질색이라는 듯 괜히 팔 문지르다) 음~.. 뭐, 할 말 있으면 하는 게 어때? (연합군 쪽 보다가 시선 돌려서 체이스 바라봐요.)
체이스 크뤼거:...인류의 희망이 이곳에 있다. 우리의 손 안에 미래가 걸려있어. 참 무거운 말이지.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다. 주어진 사명에 등을 돌리지 않은 채 종말의 전장에 당도한 그대들을,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기억할 것이다. 이곳은 끝이 아니니 죽음으로 나아가, 삶을 안고 돌아와라. (언제나와 같은 평온한 말투. 다만 조금 더 무거운 의지를 담아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제 죄값으로 죽어갈 이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당신의 연설에 환호나 함성은 없었습니다.
그저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따르겠다는 듯, 결연한 눈을 한 채 바라볼 뿐.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종말에 저항하는 인류 최후의 방어선이자 동시에 발악이라는 것을.
각자 저마다 소중한 것들을 뒤로하고, 혹은 그 소중한 것들과 함께 이 전장에 올랐으니.
이미 지옥같이 변해버린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 간절함에 응답하듯, 저 너머에서부터 땅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평지의 끝. 협곡이 시작되는 그 경계선으로부터 하얀 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고.. 협곡을 기어오른 괴물들.
작게만 보이던 하얀 점들은 이젠 형태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다가와 멈춰섭니다.
3형 워커의 통제를 받는 듯, 일제히 멈춰선 괴물들은 어림잡아 봐도 연합군의 수보다 월등하군요.
승산이 있을까요? 저 괴물들을 상대로?
없다 한들 어떨까요. 이미 벼랑으로 몰린 인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
라이너 에른스트:(아까 한 체이스의 연설에 괜히 휘파람을 불고선) 그런 말을 잘도 하네. 역시 이런 자리는 네가 더 맞는 걸지도~. ...뭐, 그보다도 저쪽 좀 볼래? (그러며 눈짓으로 워커들의 너머에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체이스 크뤼거:(하나 그는 알고 있지 않나. 제가 이 일의 원흉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뭐. 입에 발린 소리지 결국은. (저도 마침 늘어선 자들의 결연한 눈빛을 마주보기 버거웠던 참이었다. 따라 너머를 바라본다.)
라이너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이 향하면,
워커들의 너머에 이제 막 협곡 위로 올라선 괴물들의 어머니, 하와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하와는 창공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마치 비명과도 같은 찢어지는 소리가 죽음의 땅에 울려 퍼지고, 그것을 신호로 워커 들은 일제히 연합군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라이너 에른스트:(너머의 상황을 보고선 짧은 숨을 한번 내쉬고는 연합군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선) 우리 둘은 곧장 저쪽으로 갈테니, 길을 뚫을 수 있을 정도의 엄호만 부탁합니다~. (늘 보이는, 사람 좋은 낯으로 연합군에게 그리 말을 전하고 다시 시선을 체이스 쪽으로 돌립니다.) 그럼~.. 슬슬 가볼까? 걔가 뭘 제안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마무릴 우리가 지어야 함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혹시 이제와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면 몇 초정돈 기다려주고~.
체이스 크뤼거:(네 말에 고개를 저었다. 준비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낸 상태였다.) 기차 안에서 시간이 길었잖아. 고민할 틈은 충분했지. ..가자. 네 말대로 마무리는 우리가, 내가 지어야 해.
당신의 답을 들으면, 라이너는 짧게 웃다가 먼저 한걸음 떼어 앞장 서 나갑니다.
아, 결국 막이 오르고 말았습니다.
부쩍 가까워진 워커들을 향해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을 선두로 연합군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천 개의 총알, 저 멀리 워커 무리의 사이로 터져나가는 포탄의 폭발음.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내달립니다.
눈앞에 보이는 수만 마리의 워커들을 지나 하와에게 닿겠다는 일념 하나로.
두 사람에게 달려들던 워커에게로 그 뒤를 바짝 쫓던 노아가 뛰어듭니다.
그렇게 하나둘, 앞을 막던 괴물들이 치워지고, 두 사람 또한 거슬리는 것들을 처리해나가며 망설임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나온 길 위로는 수많은 괴물이 쓰러지고, 수많은 연합군 또한 무릎을 꿇고.. 그들의 죽음을 기릴 틈조차 없어요.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해가는 이곳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끝낼 수 있는 일을 위해 그저 앞으로 발을 뻗을 뿐.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하와' 와의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꼭 두 사람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그 거대한 괴물이 그 자리에서 쏘아지듯 빠르게 다가옵니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이 끔찍한 모습을 한 압도적인 존재가 두 사람을 마주하고, 하와의 움직임에 두 사람을 노리던 워커들 또한 주변에서 물러섭니다.
하와는 이전과 다르게 입 아래의 피부가 푸른색의 액체로 뒤덮여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식들에게로 돌아가 힘을 되찾겠다고 했던가요?
...문득 하와의 거대한 입안으로 뛰어들던 워커들과 하와의 날카로운 이빨에 늘러붙어있던 워커의 체액이 떠오릅니다.
힘을 되찾는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보군요. 이래서야 눈앞의 괴물이 정말 누구의 편인지 가늠하기 힘드네요.
하와: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도움을 원하나? 그렇다면 나의 알이 되거라. 너희 둘을 함께 핵으로 삼은 알로 만들어 주마. 나의 자식들은 너희의 존재를 동력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하나가 아닌 둘 모두가 사라져 준다면, 나의 자식들은 힘을 잃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나의 모든 자식들을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다만 먹이 없이 굶주린 것을 사냥하는 것은 쉽다. 머지않은 시일 내로 너희 인간들은 우리에게서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 행성에 뿌리를 내렸기에 우리의 먹이인 너희의 존재가 돌아온다면 우린 언제고 부활할 수 있다. 그러니 너희는 영원히 알로서 살아가야 해.
그래도, 영생을 살아가는 긴 시간 동안 서로 동반할 테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내가 유일하게 줄 수 있는 자비구나. 나 또한 인간들을 도와 나의 자식들을 몰아내겠다 약속하지. 결코 너희들을 배신하지 않으마.
결국 두 사람이 세상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군요.
방법은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다른 점이라곤, 세계에서 격리된 또 다른 세계, 두 사람의 던전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일까요.
하지만 체이스, 당신이 쥐고 있는 또 다른 선택지를 잊어선 안 됩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시계를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종말을 막으면서, 두 사람도 이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선택지.
하지만 실패한다면 영영 세상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선택지.
체이스 크뤼거:(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저만 알이 되는 것이라면 모른다. 그랬다면 상관 없었겠지. 자신은 이미 그 선택을 한 번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 옆의 라이너 에른스트는 달랐다. 그가 저 몸이 된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으며, 그는 고작 이런 곳에서 알이 되고자 저 위치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인류를 이끌어 나간 것이 아니었다.) ....기각. (빠르게 답했다. 재고할 가치 없는 선택이었다.) 대신 묻지. 다른 방법에 대해 말이야. (그리고 품에서 시계를 꺼내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나?
하와:(시계를 보이면 아는 것을 본 듯,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반응합니다.) ..본 적이 있는 물건이다. 아마도, 이 세계의 멸망을 원하지 않는 또 다른 신이 지나갔던 모양이지. ..그래서, 내 제안이 기각이라면. 그것을 사용해 육신의 시간이라도 돌릴 생각인가?
체이스 크뤼거:..... 오래 고민해봤어. 내가 이걸 가지고 무얼 할수 있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인간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지. 그래. 시작은 나야. 내가 너희들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럴 수 있다면. 라이너 이 녀석도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어. (그리고 라이너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무모해보여?
라이너 에른스트:(옆에서 팔짱을 끼고서 둘이서 하는 이야길 잠자코 듣고 있다가, 물어오는 것에 답합니다.) 사실 나도 저쪽 제안은 영~.. 별로라. 조금 무모하긴 하지만, 남은 방법도 그것 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있다가) 근데 결국 돌리는 건.. 너나, 나나, 둘 다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인은 너라고 해도, 왜 저 놈이 굳이 둘 다 갇혀 있으라고 하겠어~.
체이스 크뤼거:그런 셈이겠네. 내가 더 부담을 질 수 있다면 그쪽으로 해보겠어. 시도해 본 적 없어서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뭐어, 갇혀봐서 아는데. 알은 정말 별로야. 그래도 이게 희망이 있잖아. 이런 류의 도박은 싫어한다 했지만... (그리고 말을 멈췄다. 곧 한숨을 쉰다.)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어울려 줘.
라이너 에른스트:그래, 그래~. 어울린 거. 이번에도 어울려주지 뭐.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그것 밖에 없으니까. (그러며 기지개를 쭉 폅니다.) 근데 일이 잘 끝나면.. 너, 빚진 게 제법 많아지겠네. 이거 감당 가능할려나 모르겠어~. (농담인 듯, 가벼히 말했네요.)
체이스 크뤼거:............갚, .....으려 노력.. 해보지. ....(자신이 생각해도 꽤 많긴 했다. 어쩐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뻘쭘하니 고개를 끄덕이다 피식 웃곤 손바닥 위에 시계를 올려두었다.)
두사람은 선택합니다.
비록, 누군가는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는 불확실한 도박이라 하더라도, 이 작은 희망에 걸어보겠다고요.
당신은 '시계'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둡니다.
평범한 인간의 신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마력을 지불해야한다 했던가요?
공교롭게도 당신과 라이너,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인간의 신체와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의 원천이 되는 존재이기에, 문제 될 것은 없을 겁니다.
잠깐의 침묵, 하와는 두사람을 응시하고 다시금 말을 건냅니다.
하와:결국 그걸 사용할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체이스 크뤼거, 너 스스로도 알겠다만 더욱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대하신 그분의 소유가 되기 이전의 몸으로, 그리하면 그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너는 그분을 만난 뒤로 아주 긴 시간을 성장이 멈춘 채 살아왔기에 주문을 사용할지라도 당장엔 몸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신체의 변화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멈추거라.
늦지 않게 끝마쳐야 할 거다. 엄호해주지. 그럼, 행운을 비마.
말을 마친 하와는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돌며 경계하던 워커들을 내쫓으려는 듯, 뒤로 빠르게 날아가 버립니다.
저렇게 행동하는 걸 보면 정말 두 사람을 도울 생각은 있었던 걸로 보이네요.
주문이 성공한다면 둘 중 한 사람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주 오랜 과거의 몸으로 돌아갈 것이며,
다른 한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전, 혼자서는 두 발로 설 수조차 없던 어린 시절의 몸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인류 최후의 방어선. 연합군의 총사령관. 최고의 나이트.
가장 강인하고 가장 고귀하며, 가장 아름다운 힘을 지닌 '노아', 방주의 수호자.
어떤가요 체이스, 그리고 라이너. 그 모든 것들과 작별할 각오는 했나요?
물론 앞서 한 이야기는 주문이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겠죠.
지금 마주하는 서로의 모습이 살아서 보는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짧게나마 미리 인사를 나눠둘까요.
체이스 크뤼거:(무슨 말을 해야할까. 수 많은 말들이 맴돌았지만 막상 입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은 적었다.) ...꽤 길었어. 만나서 반가웠고, 미안했다. 혹여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때는 네가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 너 다운 삶 말이야. ....그럼, 끝까지 잘 부탁하마.
라이너 에른스트:(눈만 꿈뻑이며 체이스를 바라보다가 손 설래 내저어요.) 너한테 사과를 받으니까 괜히 오싹한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래? 그런 말을 아주 잘도 하네. 뭐~.. 잘 되면 원래 삶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겠지. 그래도 지금보단 훨-씬 낫겠지만. (그리고 잘 부탁 한다는 말에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다가) 그러고보니 나는 그게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나? (체이스 손 위에 시계보다가 시선 돌렸습니다.)
체이스 크뤼거:(그럼 제가 시계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네 앞으로 내밀었다.) 이 위로 네 손을 올리면 되지 않을까.
라이너 에른스트:(딱히 내키질 않는지, 잠깐 보고 있다가 숨을 한번 짧게 내쉬고선 그 위로 손 얹습니다.) 차라리 1개 더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지~.
체이스 크뤼거:그렇게 싫어할 일인가? (피식 웃곤) 참아 봐. 마지막이잖아.
라이너 에른스트:싫다기 보단 별로 내키질 않은 일이라서. ..그래. 네 말대로 마지막이니까. 눈 딱 감고 해야지 뭐~. (가볍게 말하고서는 픽 웃어요.)
체이스 크뤼거:(짧게 긴장된 숨을 내쉬고는 곧, 변형된 시간관문의 주문을 외웠다.)
라이너 에른스트:(따라 주문을 외워 마력을 불어 넣어봅니다. 운이 나빠 실패하면 자신이 없어질 수 있는데도, 딱히 불안한 낯이라기 보단 되려 더 여유가 있어 보이는 낯으로 있습니다.)
얼떨결에 함께 쥐어지게 된 시계에 마력을 불어넣어 주문을 외기 시작하면, 맞잡은 손에서 새어 나온 푸른 빛이 두 사람을 감쌉니다.
이내 주변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이 두 사람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듯 뿜어져 나오고...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손에 쥔 주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에 눈앞이 아찔합니다.
능력을 사용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마나의 흐름이 전신을 뒤덮어 옵니다. 눈이 시큰거리며 피부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따끔한 감각이 느껴지고...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3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80/40/16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뒤이어 찾아온 것은 두통이군요. 기분 나쁘게 머리를 울리는 통증은 끔찍합니다.
누군가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 것과 견주어도 부족할 게 없는 통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마터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마주한 그 또한 비슷한 통증을 느끼는 듯, 약간 인상을 찌푸리곤 있으나 맞잡아져 있는 손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그래요, 벌써 지칠 수는 없죠. 다시 마나의 흐름에 집중해봅니다.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80/40/16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귀와 코 아래의 피부로 뜨거우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집니다.
아마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죠. 곧바로 집중을 흩트려놓는 성가신 이명과 먹먹한 통증이 찾아옵니다.
견뎌낼 수는 있는 수준이지만.. 이 감각이 지속된다면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씩 눈 앞이 흐려집니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아야 합니다. 바로 옆의 그도 버텨내는걸요. 이제 와서 놓을 순 없겠죠.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80/40/16 |
굴림: | 6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시야가 이따금 까맣게 점멸합니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마나가 마치 바늘처럼 느껴져요. 온몸이 찢겨 나갈듯한 통증은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위험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 안을 울리는 두통과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한 통증이 끔찍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버립니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버틸 수 있다면......
라이너 에른스트:정신 안차리지?! 피곤한 나도 힘내니까, 조금 더 힘내보지 그래?
체이스 크뤼거:...쯧. 알고 있어. (금방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것을 책임감과, 간절함과, 그리고... 자존심을 지켜가며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당신의 말에 돌아오는 답은 없고, 한쪽 어깨만 으쓱했다가 맙니다.
혼자 여유로운 척, 말은 하고 있지만 힐긋보면 답지않게 그도 약간 표정 구긴 낯을 하고서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겠네요.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5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80/40/16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떻게든 정신을 차렸다지만, 여전히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쩐지, 이제 곧 모든 게 끝날 것이라는 직감이 듭니다. 그렇다면 끝나는 건 무엇일까요.
당신의 몸을 잠식한 고통? 이 세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어요...
그전에 왜 이런 고통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거였죠?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뭐던가요.
바로 옆에 선 이는 누구길래 담긴 감정을 차마 다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당신을 보고 있는 거죠?
......아, 순간적으로 모든 기억이 뒤섞여 자신을 잃어버릴 뻔합니다. 위험했어요.
흐려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잊을 뻔한 이름을 되뇝니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이 고비를 넘어가면 모든 것이 끝나길... 그렇게 속으로 빌어보며 다시 한번 마나를 불어넣으면...
체이스 크뤼거:
기준치: | 65/32/13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준치: | 60/30/12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80/40/16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라이너 에른스트:
기준치: | 85/42/17 |
굴림: | 6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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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해졌던 의식을 되찾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인지 시야는 먹구름이 낀 흐린 하늘로 가득 차 있어요.
유난히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끝난건가요? 그렇다면 성공한 건가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몸을 일으키려 애써봅니다.
어째서인지, 입고 있던 옷이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땅을 짚는 손바닥으로부터 차갑고 거친 땅의 감촉이 느껴지는 걸 보니, 살아있음은 분명한 듯 한데...
손? 그러고 보니 라이너는요? 그와 맞잡고 있었을 손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없습니다. 맞닿아 있어야 할 그의 손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홀로 남겨진 당신의 손이 아주 작았다는 겁니다. 마치, 아이의 것처럼...
고개를 들어 봐도 라이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라이너가 자리했던 곳은, 당신이 입은 것과 비슷한 결의 검은색 제복만이 바닥을 구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결국 이곳엔 체이스, 당신 혼자 남아버렸습니다.
돌이킬 수 있을까요? 그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방법이 있다면 시도는 해볼 수 있겠나요?
이미 아주 오래전으로 되돌아간 당신의 몸으로는, 이제 아무런 능력도 쓸 수 없을 겁니다.
매 순간 선명하게 느껴지던 마나의 흐름도 더는 느껴지지 않아요.
그저 평범한 인간, 게다가 어린아이의 몸이 돼버렸습니다.
괴물들이 판치는 전쟁터에는 아무 쓸모도 없을... 하지만...
보세요. 체이스 크뤼거, 그리고 이젠 존재하지 않는 그가 이루어낸 것들을. 눈앞의 풍경을.
이미 수많은 괴물의 시체로 하얗고 파랗게 물들어버린 대지와 그 위에 선 연합군들.
살아남은 워커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거나 겁을 먹은 듯 도망치기 바쁩니다.
누가 보아도 연합군, 아니 인류의 승리라 볼 수밖에 없는 광경.
홀로 주저앉아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걷히지 않을 것만 같던 먹구름이 걷힙니다.
창백한 땅 위로 찬란한 색을 머금은 빛줄기가 가로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넓은 죽음의 대지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듭니다.
당신의 생존을, 인류의 승리를, 그리고 구원받은 세계를 축복하는 것처럼.
그 세계를 구원한 또 다른 영웅의 종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는 이제 이 세상엔 없습니다. 찬란한 빛 아래에 비어버린 손을 내려다봅니다.
이로써, 그를 만나기 전, 다시 홀로 살아가야 할 내일이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주문을 성공시킨 직후, 하와의 말대로 워커들은 빠르게 힘을 잃어갑니다.
열세한 상황에 놓인 워커들은 빠르게 전장에서 도망치기 시작했고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하와는 연합군에게 당신과 라이너, 두 사람의 상황을 전했고 이로 인해 살아남은 당신만 가장 가까운 도시인 방주로 이송됩니다.
전장에서 달아난 워커들 또한 수년간의 사냥 끝에 거의 멸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살아남은 개체들은 마나의 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활동을 멈추고 시체와도 같은 동면 상태에 돌입합니다.
하와 또한 모든 일이 끝나갈 때 즈음 북대륙의 빙벽으로 돌아가 스스로 잠들었다던가요.
마나의 공급이 끊긴 것으로부터 세계는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능력을 지닌 노아 들은 서서히 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워커의 위험에서 벗어난 인류는 도시 밖으로 나와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나갑니다.
멸망해가던 행성은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종말로부터 세계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 사람은 영영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고, 남아있는 한 사람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더는 방주를 수호할 수 없게 됐지만,
괜찮을 거예요. 워커가 사라질 세상에선 영웅은 필요 없을 테니.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세계를 구원해낸 영웅으로 남았으며, 앞으로도 이 세계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